WEKO3
アイテム
조선 왕릉에 대한 역사지리적 고찰―풍수적 관련 사실을 중심으로―
http://hdl.handle.net/10112/6143
http://hdl.handle.net/10112/614386b38590-8a41-474e-8e1c-ffdbfc152b53
名前 / ファイル | ライセンス | アクション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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![](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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Item type | 一般雑誌記事 / Article(1) | ||||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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公開日 | 2012-02-22 | |||||
タイトル | ||||||
タイトル | 조선 왕릉에 대한 역사지리적 고찰―풍수적 관련 사실을 중심으로― | |||||
言語 | ||||||
言語 | kor | |||||
資源タイプ | ||||||
資源タイプ識別子 | http://purl.org/coar/resource_type/c_6501 | |||||
資源タイプ | article | |||||
著者 |
최, 원석
× 최, 원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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概要 | ||||||
内容記述タイプ | Other | |||||
内容記述 | 이 글은 조선 왕릉의 분포. 입지. 배치 특징과 경관의 조성 및 관리에 대한 풍수 적 관련 사실을 역사지리적으로 검토한 것이다. 또 경관상에 드러나는 가시적 형 태뿐만 아니라 입지 및 형성 과정을 둘러싸고 전개된 정치권력집단 간의 공간정치 적 양상을 주목하였다. 이들은 조선 왕릉이 통시적인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면서, 공 시적으로 중국 명. 청대 능과 비교되는 문화적 요소임을 말해주고 있다. 조선 왕릉은 도성을 중심으로 과반수 이상이 20-40리 범위의 외곽에 산포되어 있 고 북동쪽과 북서쪽 권역에 집중하였다. 이는 신라와 고려 왕릉보다 광역적이다. 왕 릉의 입지 경향은 小盆地의 산기슭에 있어, 신라 왕릉이 평지나 구릉지, 고려 왕릉 이 산지의 山腹에 위치하는 것과 다르다. 이는 풍수적 요인이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. 同域 내 異陵 간의 거리는 300m 내외가 많으며, 홍살문부터 능까지의 거 리는 대체로 150-200m 내외이다. 조선 왕릉의 배치는 남향 범위가 절대적이었다. 능 침은 緩斜面의 자연지형을 補土해 만들었고, 명당수 역시 자연지형의 물길에 순응하 여 조성하였다. 조선 왕릉은 조선 왕조의 권위적이고 상징적인 경관이었다. 조선 왕릉의 입지 선 정 및 遷陵 과정은 왕실 혹은 왕족, 왕과 신하, 신하 간의 정치적 세력 관계가 풍수 설을 政略的 수단과 外皮로 하여 나타난 정치사적 결과물이었다. 풍수는 조선 왕릉의 조성 과정 및 경관 축조에 큰 영향을 주었다. 조선 왕릉은 풍 수지리적 원리에 따라 능의 위치와 배치, 능역 경관의 조영이 이루어졌기에 풍수적 입지경관을 나타내었다. 조선 왕릉의 관리 상태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왕에게 보고되 었으며 국가의 법전에서 관리 내용 및 담당 역할이 규정되었다. 조정에서는 왕릉의 관리를 두고 풍수관료의 풍수적 원리고수의 입장과 儒臣의 經世的 실용 논리가 대 립하면서 조정되는 양상이 빚어지기도 하였다. 한국 風水史에서 볼 때 왕릉 풍수는 조선시대적인 왕조 정치집단의 사회적 속성을 갖는 풍수 담론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. 한편 조선 왕릉과 관련한 역사적 유산 중에서, 조선 왕릉의 풍수적 재현물이자 특 수지도로서 산릉도가 주목되었다. 산릉도에는 능역을 구성하고 있는 경관 요소들이 회화식으로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수적 山水 묘사 방식을 보이며 자세한 풍수 정보가 표기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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書誌情報 |
周縁の文化交渉学シリーズ3 『陵墓からみた東アジア諸国の位相―朝鮮王陵とその周縁』 p. 15-26, 発行日 2011-12-31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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ISBN | ||||||
識別子タイプ | ISBN | |||||
関連識別子 | 978-4-9905164-6-8 | |||||
出版者 | ||||||
出版者 | 関西大学文化交渉学教育研究拠点(ICIS) | |||||
シリーズ | ||||||
関連名称 | Vol.3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