@article{oai:kansai-u.repo.nii.ac.jp:00010197, author = {熊谷, 明泰}, journal = {関西大学外国語学部紀要 = Journal of foreign language studies}, month = {Mar}, note = {조선어 연구자 리극로(李克魯)는 1920 년대 유럽 유학 당시 , 최첨단의 음성학을 접한 후『실험도해 조선어 음성학』을 1947년 11월 15일 서울에서 간행했다(이하 ‘서울판’). 1948년 4 월 북조선으로 넘어간 그는 1949년 11 월 25일 조선어문연구회(평양)에서 개정 증보 판을 간행했다(이하 ‘평양판’). 리극로에 관한 선행연구에서는 단지 이 ‘평양판’ 이 출판되었 다는 사실만을 언급하고 있을뿐이어서 연구자들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. 본 연구는 ‘평양판’ 에 새롭게 가필된 부분과 ‘서울판’ 에서 삭제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비교 · 대조하면서 , 두 문헌에 나타난 차이점을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 . 리극로가 파리 대학에서 조선어 음성연구의 피험자(被驗者)가 된 것에 대해 , ‘서울판’ 의 서문에 “ 1928 년 봄에 一個月 동안” 이라고 쓰여져 있지만 , ‘평양판’ 의 서문에는 “ 1928 년 3 월에 한 달 동안” 이라고 다시 고쳐져 있다 . 여타의 선행연구에서는 “ 1928 년 5 월” 이라 고 쓰여진 것도 보이는 등 , 검토를 필요로 하는 사항이다 . 리극로는 월북 후 , 평양의 국립영화촬영소의 녹음기와 체신성(遞信省)의 오실로그래프 를 이용하여 음성연구를 실시하였는데 , 그 성과가 ‘평양판’ 에 가필되어 있다 . 조선어 악센트 연구는 월북 작곡가 김순남(金順男)의 협력을 얻었다고 서문에 쓰여 있는데 , 경기도의 높 낮이 · 강약 악센트를 , 오선지를 사용하여 기술한 것은 그 영향일 수도 있다 . 또한 , 김순남은 서울 중심지의 낙원동 출신이었기에 , 리극로의 경기도 악센트 연구에 있어서 피험자이었을 지도 모른다 . ‘평양판’ 의 어휘 · 표현 등은 , 여러 곳에서 ‘서울판’ 을 수정한 것이며 , ‘평양판’ 은 조선 고 유어의 어소(語素)를 잘 살렸기에 민족성이 뛰어난 문체로 변하였다 . 또한 ‘평양판’ 이 간 행되기 한 달 전에 조선어문연구회는『조선어문법』을 간행했는데 , 리극로는 이 문법서의 주요 집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. ‘평양판’ 은 절음부(絶音符)의 채용 , 여린 히읗을 “목청 터 침소리 (聲帶破障音)” 의 음성표기에 사용하는 등 ,『조선어문법』과 유사점도 보인다 . 리극로는 조선어연구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연구자의 한 사람이며 , 아울러 이 ‘평양판’ 도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., 研究論文}, pages = {43--85}, title = {李克魯著『実験図解 朝鮮語音声学』 (1949年11月、平壌)に対する若干の考察}, volume = {8}, year = {2013} }