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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      <dc:title>조선 왕릉에 대한 역사지리적 고찰―풍수적 관련 사실을 중심으로―</dc:title>
          <dc:creator>최, 원석</dc:creator>
          <dc:creator>4950</dc:creator>
          <dc:description>이 글은 조선 왕릉의 분포. 입지. 배치 특징과 경관의 조성 및 관리에 대한 풍수
적 관련　 사실을 역사지리적으로 검토한 것이다. 또 경관상에 드러나는 가시적 형
태뿐만 아니라 입지 및 형성 과정을 둘러싸고 전개된 정치권력집단 간의 공간정치
적 양상을 주목하였다. 이들은 조선 왕릉이 통시적인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면서, 공
시적으로 중국 명. 청대 능과 비교되는 문화적 요소임을 말해주고 있다.
　조선 왕릉은 도성을 중심으로 과반수 이상이 20-40리 범위의 외곽에 산포되어 있
고 북동쪽과 북서쪽 권역에 집중하였다. 이는 신라와 고려 왕릉보다 광역적이다. 왕
릉의 입지 경향은 小盆地의 산기슭에 있어, 신라 왕릉이 평지나 구릉지, 고려 왕릉
이 산지의 山腹에 위치하는 것과 다르다. 이는 풍수적 요인이 반영되었기 때문으로
생각된다. 同域 내 異陵 간의 거리는 300m 내외가 많으며, 홍살문부터 능까지의 거
리는 대체로 150-200m 내외이다. 조선 왕릉의 배치는 남향 범위가 절대적이었다. 능
침은 緩斜面의 자연지형을 補土해 만들었고, 명당수 역시 자연지형의 물길에 순응하
여 조성하였다.
　조선 왕릉은 조선 왕조의 권위적이고 상징적인 경관이었다. 조선 왕릉의 입지 선
정 및 遷陵 과정은 왕실 혹은 왕족, 왕과 신하, 신하 간의 정치적 세력 관계가 풍수
설을 政略的 수단과 外皮로 하여 나타난 정치사적 결과물이었다.
　풍수는 조선 왕릉의 조성 과정 및 경관 축조에 큰 영향을 주었다. 조선 왕릉은 풍
수지리적 원리에 따라 능의 위치와 배치, 능역 경관의 조영이 이루어졌기에 풍수적
입지경관을 나타내었다. 조선 왕릉의 관리 상태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왕에게 보고되
었으며 국가의 법전에서 관리 내용 및 담당 역할이 규정되었다. 조정에서는 왕릉의
관리를 두고 풍수관료의 풍수적 원리고수의 입장과 儒臣의 經世的 실용 논리가 대
립하면서 조정되는 양상이 빚어지기도 하였다. 한국 風水史에서 볼 때 왕릉 풍수는
조선시대적인 왕조 정치집단의 사회적 속성을 갖는 풍수 담론의 특징이라고 볼 수
있다.
　한편 조선 왕릉과 관련한 역사적 유산 중에서, 조선 왕릉의 풍수적 재현물이자 특
수지도로서 산릉도가 주목되었다. 산릉도에는 능역을 구성하고 있는 경관 요소들이
회화식으로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풍수적 山水 묘사 방식을 보이며
자세한 풍수 정보가 표기되었다.</dc:description>
          <dc:description>article</dc:description>
          <dc:publisher>関西大学文化交渉学教育研究拠点（ICIS）</dc:publisher>
          <dc:date>2011-12-31</dc:date>
          <dc:format>application/pdf</dc:format>
          <dc:identifier>周縁の文化交渉学シリーズ3 『陵墓からみた東アジア諸国の位相―朝鮮王陵とその周縁』</dc:identifier>
          <dc:identifier>15</dc:identifier>
          <dc:identifier>26</dc:identifier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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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      <dc:identifier>http://hdl.handle.net/10112/6143</dc:identifier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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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      <dc:language>kor</dc:language>
          <dc:relation>Vol.3</dc:relation>
          <dc:relation>978-4-9905164-6-8</dc:relation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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